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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유다의 멸망 이유

by 꽉채운정보 2024. 10. 6.

남유다가 바빌론에 의해 멸망한 과정은 여러 정치적 갈등과 전쟁의 결과로 이루어졌다. 기원전 7세기 말, 바빌론 제국은 아시리아 제국을 무너뜨리고 중동 지역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그 과정에서 남유다 역시 바빌론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었는데, 남유다는 처음에는 바빌론의 지배를 받아들였지만, 내부의 정치적 불안과 외부 세력과의 관계 속에서 점차 갈등이 심화되었다.

 

남유다의 멸망을 결정짓는 사건은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 2세의 군사적 침략이었다. 남유다는 당시 이집트와 바빌론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했지만, 바빌론은 남유다를 확실히 지배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기원전 597년에 바빌론은 남유다를 침공했고, 당시 왕이었던 여호야긴은 항복했다. 바빌론은 이때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여호야긴 왕을 비롯한 많은 유다의 지도층을 바빌론으로 끌고 가는 첫 번째 유배를 단행했다. 바빌론은 여호야긴의 삼촌 시드기야를 남유다의 새로운 왕으로 세웠다. 시드기야는 바빌론의 꼭두각시 왕으로 즉위했지만, 정치적 압박 속에서 그는 바빌론에 반기를 들고 이집트와 동맹을 시도했다. 이로 인해 기원전 589년에 바빌론은 다시 남유다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바빌론군은 예루살렘을 포위했고, 기원전 586년에 예루살렘은 함락되었다. 이때 바빌론군은 성벽을 파괴하고, 솔로몬 성전은 불타 없어졌으며, 남유다는 사실상 멸망하게 되었다. 느부갓네살 2세는 예루살렘 함락 이후 남유다의 많은 주민을 바빌론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이 사건은 바빌론 유수라고 불리며, 이는 유대인들에게 큰 상처와 충격을 안겨 주었다. 유다 지도층을 비롯한 주요 인물들은 바빌론으로 끌려갔고, 남유다 지역에는 소수의 잔류민들만 남겨졌다. 바빌론은 남유다를 직접 통치하게 되었고, 이 지역은 바빌론 제국의 일부로 흡수되었다. 바빌론의 정책은 정복한 지역의 엘리트 계층을 바빌론으로 끌고 가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정복지의 정치적 저항을 약화시키고, 바빌론의 통제력을 강화하려 했다.

 

이 정책은 남유다에서도 적용되었고, 유대 민족의 많은 지도자들이 바빌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러한 바빌론 유수는 유대인의 종교적, 문화적 정체성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고, 이후 이들이 고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유대 민족의 기억 속에 중요한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남유다의 멸망은 바빌론 제국의 군사적 힘과 정치적 압박의 결과였다. 바빌론은 남유다를 두 번에 걸쳐 침공하고, 두 번째 침공에서는 예루살렘을 완전히 파괴하여 남유다를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만들었다.